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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브랜드 가이드라인은
가장 쓸모없는 문서가 될 수 있다
브랜딩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 클라이언트의 책상 위에는 보통 묵직하고 근사한 책 한 권이 놓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브랜드 가이드라인' 혹은 '브랜드 북'이라 부릅니다. 수백 페이지에 걸쳐 로고의 최소 사이즈, 전용 서체의 자간, 지정 컬러의 Pantone 값까지,
브랜드의 모든 것을 픽셀 단위로 완벽하게 규정해 놓은, 마치 브랜드의 성서(聖書)와도 같은 문서입니다.
이 책은 하나의 브랜드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기념비이자, 앞으로 그 브랜드를 운영할 모든 이들을 위한 율법서입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완벽하게 만들어진 '성서'는 대부분의 경우 책장에서 먼지만 쌓인 채,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가장 쓸모없는 문서가 되어버리는 걸까요?
이 주제는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이자, 브랜딩 업계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입니다.
# 왜 완벽한 가이드라인은 실패하는가?
문제는 가이드라인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 때문입니다.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버린 가이드라인
대부분의 브랜드 가이드라인은 '미래의 사용자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과거 프로젝트의 결과 보고서'처럼 만들어집니다.
그것은 브랜드를 만든 컨설턴트의 노고를 증명하는 아름다운 박제이자,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전시된 유물과 같습니다.
당장 내일 마케팅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실무자에게, 수백 페이지짜리 PDF는 너무나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장애물일 뿐입니다.
그들은 결국 가장 쓰기 편한 오래된 버전의 로고 파일을 사용하게 됩니다.
영감을 주기보다 금지하는 '규칙'
가이드라인을 펼쳐보면 온통 '해서는 안 되는 것들(Don'ts)'의 목록으로 가득합니다. "로고를 변형하지 마시오", "지정되지 않은 색을 사용하지 마시오".
마치 브랜드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연약한 유리 세공품인 양, 직원들을 잠재적 파괴자로 취급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브랜드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창의성을 억압합니다.
구성원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그저 규칙을 어기지 않는 가장 안전한(그리고 가장 지루한) 방법만을 택하게 됩니다.
흐르는 강물에 세워진 '동상'
정성껏 인쇄된 책자는 만들어지는 순간 과거의 유물이 됩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살아가는 시장과 미디어 환경은 틱톡, 메타버스 등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강물과 같습니다.
새로운 플랫폼에 어떻게 브랜드를 적용해야 하는지, 갑작스러운 콜라보레이션 제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쇄된 가이드라인은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합니다.
# '살아있는 가이드라인'을 향하여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책'이 아닌, 살아있는 '플랫폼'으로, '규칙'이 아닌 '원칙과 도구'로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책에서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으로
최신 로고 파일, 발표용 템플릿, SNS용 이미지 가이드 등을 언제 어디서든 검색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살아있는 디지털 허브가 필요합니다.
'규칙'에서 '원칙'으로
"로고는 반드시 좌측 상단에 20px 떨어뜨려 배치한다"는 경직된 규칙 대신, "우리의 브랜드는 항상 명료하고 자신감 있게 보인다"는 쉽고 강력한 '원칙'을
공유해야 합니다. 원칙을 이해한 구성원은 어떤 새로운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금지'에서 '도구와 영감'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열하는 대신, 원칙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도구(Tool)'를 제공해야 합니다. 잘 만들어진 템플릿, 추천 이미지 라이브러리, 그리고 원칙을
창의적으로 적용한 '좋은 예시(Best Practice)'들을 풍부하게 보여줌으로써, 구성원들이 브랜드를 가지고 '놀이'처럼 즐겁게 일하도록 영감을 주어야 합니다.
# 우리는 정원을 설계해야 합니다.
브랜드를 보호해야 할 연약한 대상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브랜드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가꾸고 키워나가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촘촘한 규칙으로 가득한 '새장(Cage)'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그래서 풍성한 '정원(Garden)'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브랜드는 이러하다"는 몇 가지 핵심적인 '원칙'이라는 울타리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며 브랜드라는 나무를 키워낼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라는 씨앗과 '영감'이라는 자양분을 제공해야 합니다.
브랜드는 통제하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가능성을 믿고 함께 키워나갈 때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표님의 책장에 꽂힌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보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팀에게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지도입니까?
아니면 누구도 읽지 않는 아름다운 묘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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